무지와 무모, 지기와 지피
상황 파악 없이 덤비는 게 무지라면 상황 파악을 하고도 헤아리지 않고 덤벼드는 것이 무모입니다. 손자병법을 쓴 손자는 무지와 무모를 가장 경계했는데요. 그래서 나온 말이 '지피지기 백전불태'입니다. '자신을 알고 상대방을 알면 100번 싸워도 위험하지 않다'라는 뜻으로 손자병법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죠. 나를 알지 못할 때 무지와 무모가 생깁니다. 심리학에서 더닝 크루거 효과가 이를 잘 보여주는데요. 코넬 대학교의 더닝과 크루거 교수가 학부생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아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봤죠. 완전한 무지 상태에서는 자신감이 제로이지만 조금씩 알아가면서 자신감이 치솟습니다. 이곳이 바로 무지의 최고봉입니다. 아주 조금 알고 있는데 자신감은 최고인 수준이죠.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때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싸움을 겁니다. 100번 싸우면 100번 패하죠. 자신도 모르고 상대도 모르면서 덤볐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경험을 쌓고 조금 더 배우기 시작하면 자신감이 급속도로 내려갑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 투성입니다. 이 지점이 바로 절망의 계곡입니다. 예전의 자신이 무식하게 용감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절망에 빠져 포기를 고민하는 단계이죠. 여기서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면 자신감이 서서히 올라갑니다. 조금씩 전문가가 됩니다. 현장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하고 오히려 실력 있는 사람이 겸손합니다. 이를 과학적으로 밝혀낸 것이 더닝 크루거 효과이죠. 싸움에서 이기려면 나를 아는 '지기'를 넘어 상대방을 아는 '지피'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알아도 상대방을 모르면 한 번은 승리해도 한 번은 패합니다. 손자병법이 말하는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이죠. 전쟁은 내가 강하다고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적이 승리할 조건을 제거하면서 내가 이길 기회를 만들어야죠. 손자병법은 이를 '적이 이길 수 없는 형세를 만들고 기다렸다가 싸워 이긴다'라고 말했습니다. 적이 이기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고, 내가 이기는 것은 적에게 달려 있습니다.
심리전을 통한 전략
'심리학으로 읽는 손자병법'은 손자병법을 심리학을 곁들어 풀어놓은 책입니다. 기원전 500여 년 춘추 시대에 탄생한 손자병법은 수많은 명장에게 승리의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손자병법을 활용해 조조가 삼국시대를 마무리했고, 근대 나폴레옹이 유럽을 흔들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미국의 키신저가 외교에 손자병법을 응용했고, 빌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손정희가 손자병법을 읽은 것으로 유명하죠. 손자병법이 수천 년간 사랑받은 이유는 사람의 심리, 군중의 심리가 깊이 분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무수한 욕망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 바로 전쟁터인데요. 손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바로 심리전입니다. 손자병법은 공략에도 순서가 있다며 다음 네 가지 싸움을 소개합니다. 상병벌모, 최상의 싸움은 적의 모략을 깨는 것이고 기차벌교, 그다음이 적의 외교를 깨는 것이다. 기차벌병, 그다음에 적의 군대를 깨는 것이며 기하공성, 최하책의 적의 성을 공략하는 것이다. 상병벌모에서 벌모는 물리적인 충돌을 하기 전에 상대의 심리를 탐색한 후 그 의도를 미리 깨뜨리는 것입니다. 상대가 공격할 수 없게끔 상황을 만드는 거죠. 기차벌교에서 벌교는 적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입니다. 적의 동맹을 없애고 기반을 제거하는 거죠. 벌모와 벌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심리전입니다. 강자만의 전략이 아닙니다. 오히려 약자가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길 수 있는 전략이죠. 반면 벌병과 공성은 피 터지게 싸워서 이기는 전략입니다. 손자는 이길 수 있다 해도 그 후에 오는 이익과 손해를 감안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능하면 싸우지 않고 이겨라' 이것이 손자병법의 대원칙이죠. 싸우지 않고 이기려면 형세를 유리하게 이끌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상대를 조종할 수 있어야 하는데요. '심리학으로 읽는 손자병법'에서는 이익과 손해를 적절히 상대에게 보여줘야 한다며 다음 구절을 소개합니다. '적을 내게로 오게 하려면 이익을 내비치고, 적이 오지 않게 하려면 손해를 내비쳐라.' 인간은 위기에 직면하면 본능적으로 공격과 도주 중 하나를 결정합니다. 원시인 때부터 형성되어 우리 뇌 속 편도체에 각인된 반응이죠. 인간은 사냥물을 앞에 두고 이길 수 있을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지면 죽고 이기면 식량을 얻었죠. 지금도 우리는 이익과 손해를 본능적으로 빠르게 계산한 뒤 행동에 나섭니다. 적을 조종할 때도 적이 본능적으로 이익을 느끼게 하거나 손해를 느끼게 해야 합니다. '심리학으로 읽는 손자병법'에서 저자는 이를 손빈과 방연의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손빈과 방연의 사례
손빈과 방연은 원래 귀곡자라는 스승 아래서 같이 공부한 사이였는데, 방현의 배신으로 원수 사이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341년 위나라 장수 방연과 제나라의 책사 손빈이 맞붙었습니다. 위나라 도성을 공격하던 손빈은 방연이 다가오자 겁을 먹은 듯 조금씩 철군하기 시작했습니다. 손빈은 철군하면서 야영장에 아궁이 수를 줄여갔습니다. 처음에 머물렀던 야영장에서 아궁이의 수는 10만 개였는데 다음은 그 절반, 다음은 그 절반으로 줄여 나간 거죠. 이를 본 방연은 제나라 군사들이 겁을 먹고 탈영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나라 군대를 따라잡기만 하면 금세 섬멸해 큰 공을 세울 거라고 기대했죠. 이익에 눈이 먼 방연은 행군 속도를 2배로 올려 급하게 추격했습니다. 손빈의 군대가 매복해 있던 마릉 계곡까지 따라 들어갔죠. 방연이 계곡으로 성큼 들어서자 테러가 끊기고 제나라의 집중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방연은 부상을 입은 뒤 자결했고 위나라 군대는 대패하였죠. 이 전투로 기세등등했던 위나라가 몰락하기 시작했고 제나라가 패권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적이 오지 않게 하려면 직감적으로 적이 공격하는 게 손해라고 느끼게 해야 합니다. 촉나라의 제갈량이 군사 2500명으로 자그마한 서성을 지키고 있을 때입니다. 어느 날 위나라의 사마의가 15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제갈량은 아무 말 없이 흰 옷을 입고 성루에 앉아 거문고를 연주했습니다. 성문도 활짝 열어두고요. 사마의가 성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제갈량의 거문고소리가 들려왔고, 성내 백성들이 평온하게 거리를 쓸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본 사마의는 손을 들어 행군을 정지시켰습니다. 벌벌 떨어야 할 상대가 태평하니 위험 신호가 뇌에서 울렸습니다. 함정이 있다고 생각한 사마의는 군대를 돌리라는 명령을 내렸죠.
'이익과 손해를 눈앞에 흔들어라.' 기본적이지만 강력한 전략입니다. 어릴 때 읽은 손자 방법은 딱딱하고 뻔해 보였는데, 나이가 조금 들어보니 손자병법이 정말 중요한 심리 전략을 본 병법서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적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누군가와 심리전을 해야 할 때가 생깁니다. 싸워야 할 때와 피해야 할 때를 구분해야 하고, 속임수가 필요해지기도 하죠. '심리학으로 읽는 손자병법'은 최고의 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며, 싸워야 한다면 속임수를 써서 쉽게 이겨야 한다는 솔직한 가르침을 주는 책입니다. 손자병법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여러 사례와 함께 소개해주죠. 여러분은 지금 어떤 전투를 벌이고 있나요? 전략이 필요하다면 '심리학으로 읽는 손자 병법'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지혜를 얻는 건 어떨까요?